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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책 리뷰

우리가 이세상에 살게 된 7가지 이유-6

수면 중에는 영혼이 육체를 떠난다

영혼은 이 세상과 저세상을 영원히 왕래하면서 살아가는 생명이라는 것은 이미 밝혔다. 물질은 에너지 입자가 모여서 고체화된 것이며 그 자체가 능력을 갖고 있다. 또한 질량과 에너지는 공존하며 불멸이라는 것을 현대 과학은 증명했다. 에너지 입자가 집결된 것은 육안으로 볼 수 있으나 에너지 입자의 원형은 볼 수 없다. 전기 에너지, 빛 에너지, 열 에너지, 자력 에너지, 중력 에너지를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에너지들이 우주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의식(영혼)의 존재도 부정하지 못한다. 육체가 전부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잠을 놓고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잠잘 때는 시각도 청각도 전기적 진동은 일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기능은 작용하지 않는다. 즉 잠잘 동안에는 귀가 열려 있는데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았는가.

 

인간의 뇌세포가 기억 연합적 형태라고 할 수 있는 유기질 세포 소자로써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잠을 자는 동안에도 외부적인 일체의 현상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수면 중에는 의식이 육체에서 떠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잠든 동안에는 영혼이 떠나 있다. 하지만 영자선이라는 것에 의해서 육체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언제라도 필요에 따라 육체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치 연이 실을 감으면 되돌아오는 것과 같다. 

 

우리의 오관은 단독으로는 작용할 수 없으며 의식이 육체에 되돌아왔을 때 비로소 그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오관은 객관적으로 현상을 포착하여 대뇌에 전기적 진동을 일으켜 그 파장을 의식에 통신 전달한다. 의식의 지배는 육체 전체에 미치고 있다.

 

생각하는 능력도 일하는 능력동 모두 영혼의 의지에 의해서 가능하다. 육체를 지닌 어린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서 공가를 마시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데도 엄마의 젖을 빠는 것을 보라. 

 

이것은 신불로 부터 부여받은 본능의 힘인 동시에 전생에서 되풀이했던 습관의 반복이며 관성의 법칙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젖먹이가 과연 두뇌로 판단해서 젖을 빨아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작용에 의해서 본능이 현상화된 모습이다. 울고, 잠자고, 젖을 빠는 시간대를 거쳐 유아는 성장해 간다. 잠을 잔다는 것은 육체의 휴식인 동시에 차원이 다른 세계에서 마음의 연료인 에너지를 보급받아 오기에 필요한 시간대다. 

 

자비도 사랑도 없는 부조화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 영혼이 수면 중에 차원이 다른 세계에 갔을 때 자신의 분신이나 또는 수호천사에 의해서 그 의식이 연마될 때가 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머리가 무겁거나 아픈 것은 대개 영혼이 연마된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때는 연마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원인을 찾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잘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기분 나쁜 꿈도 또한 영혼에 대한 경고이다. 영혼이 육체에 돌아오면 꿈은 거의 기억에 남지 않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띄엄띄엄 단편적인 것만 기억할 수 있다. 마음이 조화되어 있으면 부조화한 기분 나쁜 꿈은 꾸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는 자체가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원인이 있으므로 현상이 일어난다는 신리를 이해한다면 결코 엉터리 같은 이야기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꿈에서 뜻밖의 장소에 갔을 때는 전생에 다녀온 경우가 많다. 의식이 육체로 돌아오면 단편적인 희미한 기억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 세상은 어디까지나 영혼의 수행장인 3차원의 세계인만큼 조화되어 있는 올바른 마음의 소유자, 정법 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비록 차원이 다른 세계의 상태를 보고 온 경우에도 기억을  되살릴 수 없도록 틀이 짜여져 있다. 신리를 깨닫고 마음이 조화됨에 따라 비록 꿈이라 할지라도 차원이 다른 저세상에서 견학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해 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의식이 육체를 이탈한다는 사실은 광자체라는 또 한 사람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광자체가 차원이 다른 저세상에 갔을때 이따금 죽은 친지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나타나서 무슨 말을 하셨다.' 그것은 죽은 어머니를 만난 경우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의 얘기를 하기도 하고 저세상의 아름다운 풍경이며 저세상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온갖 옷들에 관한 일체의 기억을 가지고 돌아온다.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능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사장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이런 능력은 어디까지나 마음의 조화에 의해서 발휘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육체적인 수행이나 최면적인 암시 등에서 그것을 구하려고 한다. 문제는 그럴 때 자칫 잘못하면 악령에 빙의되어 폐인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리를 깨닫지 못한 채 영적 현상만을 좇는 것은 인생의 가장 위험한 줄타기이다. 

 

일상생활을 소홀히 하고 마음과 행위가 조화되지 못한 채 영적 현상이 일어나는 사람은 우선 마음에 불안이 없는가, 몸에 이상이 없는가, 거만하지 않는가, 성내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가 등을 잘 살펴서 한 가지라도 걸릴 경우 그 마음을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하지 않고서는 영적 재화를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영적인 길이 열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다. 신불(신,부처님)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정법을 배우고 그것을 마음과 행동의 양식으로 삼아야 하는 일이다. 마음과 행동의 조화를 꾀하고 서로 도와서 보다 좋은 인간 사회를 구축하며 평화의 유토피아를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 수행의 중요한 목적이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상념의 힘에 의해서 의지가 생기고 그 의지는 육체를 통해서 행위로 나타나며 그 행위에 의해서 선의 열매가 열린다. 이 선의 열매를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자기 확립을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법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악몽에 시달리지도 않으며 아침에 일어나면 상쾌하다. 항상 마음은 평화롭고 여러 가지 현상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안심하고 하루를 보낸다. 정도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항상 불안하고 부조화한 세계로 통하고 있기 때문에 그 꿈도 악몽이다. 꿈은 의식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그 의식이 현상계의 육체에 되돌아오면 표면 의식과 상념대의 저항에 부딪쳐 기억해 내기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