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 하나도 우주에 영향을 끼친다
의식이란 영혼을 말한다. 이 의식은 우리의 육체를 지배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자신의 주인공이다. 저승과 이승을 윤회하면서 지상 환경에 적응한 육체를 지니고 자신의 영혼을 연마하면서 신의 몸체인 이 세상을 평화스러운 불국토,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지상에 태어났다.
옛부터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언급해 왔고 나 자신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그 실체는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해서 마치 구름을 잡는 듯하여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보다 고차원으로 진화시키기 위해서 고통과 기쁨이라는 인생의 항로가 필요한 것이다. 영혼의 육체라는 선박에 타면 신불의 자식으로서의 사명을 자각하기는커녕 육체의 감각 기관에 사로잡혀 그 본성마저 잃고 만다. 저세상에서 약속하고 다짐했던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조상과 가문, 지위, 명예, 그리고 자신의 육체에 집착하게 된다.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인간이다. 의식, 즉 영혼이야말로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육체 오관이 감지하는 이 세상에 마음이 사로잡혀 자신의 본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질에는 에너지가 공존하고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에너지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에너지 입자가 집합하여 이루어진 물질에 관해서는 계량과 실험, 데이터 등을 수학적으로 산출해서 객관적인 고찰이 가능하다. 그리고 육체적인 요소에 관해서는 그 모습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가 있지만 의식을 육안으로 보는 것은 심안이 열린 사람 이외에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볼 수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정신적으로 고민했을 때 왜 피로를 느낀단 말인가. 우리들이 육체노동에 의해서 피로를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피로하다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에 의해서 소모된 에너지는 동물, 식물, 광물의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써 회복된다.
그들은 타액과 함께 식도를 통해서 위 속으로 들어가서 위액과 함께 소화되어 피나 살이나 뼈가 된다. 이때 침샘에서 입 안에 분비되는 소화액은 소화를 돕는 미세한 균이다. 이 세균은 매우 작은 것이며 그들은 아마 우리의 위를 거대한 우주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마치 우리들이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놀라듯이 육체의 세포 집단을 은하계 우주처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이 조그마한 세균 하나가 부조화를 일으켜도 우리들의 육체는 변조를 일으킨다. 이처럼 인류의 부조화가 얼마만큼 지구에 영향을 미치고 대우주에 해를 끼치는가 하는 것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조화의 법칙을 잊어버리게 되는 원인은 우리의 영혼이 육체의 옷을 입게 되면 잠재의식과 표면 의식의 비율이 달라져서 자신의 본심을 망각하게 되고 자기 보호와 사욕의 포로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마치 물이 열로 인해 고체, 액체, 기체라는 세 가지 모습으로 변화하듯이 의식의 표출 비율도 변화한다. 변화는 하지만 물로서의 본래 성질 H2O 중의 열 에너지 입자자 변화할 따름이다. 온도가 0 º 이하가 되면 물분자는 집중되어 고체가 되고 거꾸로 온도가 상승하면 열 에너지 입자는 분산되어 수증기가 된다.
같은 성질인 물(H2O) 도 온도의 변화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의 세 가지 모습으로 변화함과 동시에 그 비중도 차이가 난다. 액체인 물속에 얼음 덩어리를 넣으면 서로의 비중이 다르기 때문에 얼음 덩어리는 떠서 수면에 고개를 드러낸다. 그러나 대부분은 물속에 잠겨 있다. 그 비율을 보면 약 10%가 수면에 나오고 90%는 수중에 잠겨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의식도 저세상, 이 세상을 왕래하지만 그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의식의 승용차가 달라질 뿐이다. 이 현상계에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면 표면 의식은 10%가 되고 90%라는 대부분의 의식은 잠재의식으로 숨어버린다. 때문에 우리는 영혼(의식)의 수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슬픔이나 괴로움이 많은 험난한 인생 항로에서 자신을 똑바로 보고 육체의 지배자인 마음과 잘 상의해서 팔정도의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마음의 문은 열릴 것이며 인간으로서 태어난 목적과 사명도 깨닫게 된다. 그때의 기쁨은 말로써는 표현할 수가 없다.
지식으로 습득한 학문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실천이 따르지 않는 종교가 과연 신리라고 할 수 있을까. 10%의 표면 의식에 의한 가치 판단은 번뇌에 떨어지기 십상이다. 자기 보호적인 사고방식을 떨쳐버릴 수가 없고 외면적인 현상에 사로잡히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중심인 마음, 이 마음이 감동했을 때에는 누구든지 가슴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가슴에서 치밀어올라 눈물이 나오는 그런 감각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이 속마음이 우리들 전생의 기억과 위대한 불타의 예지가 담긴 보물 창고인 것이다. 70세, 80세의 인생 경험은 향불처럼 잠시 타오르는 시간이지만 우리들의 영혼은 몇억, 몇만 년 그칠 줄 모르는 윤회를 거친 모든 경험을 잠재의식 속에 간직하고 있다. 현재 자기 자신의 마음 상태는 전생 경험의 축소형 내지 유사형일 뿐이다.
우리들의 마음이 신리를 깨달은 생활을 하고 있으면 육체에서 발생하는 후광이 금색으로 보이지만 마음의 조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후광은 어둡고 빛이 희미하다는 것은 이미 언급했다.
육체를 떠난 우리의 영혼(의식)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이며 끝도 없고 시작도 없이 영원히 죽지 않고 윤회하는 보배다. 육체만이 자신이 아니다. 언젠가는 이 세상에 벗어던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육체의 운명이다. 그런 육체에 집착한 나머지 온갖 고뇌를 생산하고 있는 어리석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저세상과 이 세상을 옮겨 다니며 사는 삶은 육체의 갈아타기, 즉 배를 갈아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알 때 죽음은 인생의 종착이 아니라 이승의 졸업이며 저승에의 귀환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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