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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책 리뷰

책 리뷰 신(베르나르 베르베르)-신화

 

그리스의 창세기

 

 

태초에 카오스가 있었다. 전조는 전혀 없었다. 카오스는 모양도 소리도 빛도 없이 그냥 그렇게 무한한 크기로 나타났다. 카오스는 수천 년 동안 잠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가이아, 즉 대지를 낳았다. 

 

가이아는 남성적인 요소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수태를 하여 알 하나를 낳았고, 이 알에서 사랑의 원초적인 힘 에로스가 생겨났다. 에로스는 구체적인 형상을 띠지 않은 채로 우주 속을 돌아다녔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상태였지만, 그가 발산하는 사랑의 충동은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카오스는 신들을 낳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다. 그래서 내친김에 에러보스(어둠)와 닉스(밤)를 낳았다. 이 둘은 이내 교접하여 아이테르(영기)와 헤매라(빛)을 낳았다. 영기는 위로 올라가 우주의 상층부에 드리웠고, 빛은 우주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에레보스와 닉스는 자기네 자식들이 너무 이상해서 말다툼을 벌였다. 

 

그들은 자식들이 싫었다. 그래서 이내 자식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영기와 빛이 나타나면 어둠과 밤은 즉시 도망을 쳤다. 반대로 어둠과 밤이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면 이번에는 영기와 빛이 달아났다. 

 

한편 가이아는 혼자서 자식을 계속 낳았다. 그리하여 우라노스(하늘)와 우레아(신)와 폰토스(바다)가 태어났다. 우라노스는 위로 올라가 가이아를 덮었고, 우레아는 가이아의 옆구리에 자리를 잡았으며, 폰토스는 가이아의 몸 위로 퍼져 나갔다. 가이아의 가장 깊은 곳에는 또 다른 자식이 숨겨져 있었다. 타로타로스, 즉 동굴들로 이루어진 지하 세계가 바로 그 자식이었다. 

 

하늘, 바다, 산, 지하 세계를 낳은 가이아는 여신인 동시에 완전한 행성이 되었다. 하지만 다산성의 여신 가이아는 그 뒤로도 많은 자식을 낳았다. 가이아는 자기가 낳은 우라노스와 결합하여 열두 명의 티탄(여섯 명의 티타네스와 여섯 명의 티타니데스)과 세명의 카클롭스, 그리고 세 명의 헤카톤케이레스 즉  50개의 머리와 100개의 팔이 달린 거인들을 낳았다, 

 

그런데 우라노스는 자기가 어머니의 손아귀 안에서 놀아나는 장난감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아버지 역할을 거부했다. 그는 자기 자식들인 티탄들과 키클롭스들을 냉담하게 대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들을 지하 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가둬 버렸다. 이에 격분한 가이아는 땅속 깊은 곳에 갇혀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식들에게 날카롭게 벼린 낫을 건넸다. 

 

미쳐 버린 그들의 아버지를 죽이고 지하 세계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우라노스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행동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자칫 잘못하여 우라노스에게 벌을 받는 것보다 지하 감옥에서 썩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티탄들 중의 막내인 크로노스만은 어머니가 내민 낫을 받아 들었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가 어머니 가이아를 강제로 감싸 안으려 할 때 기습을 감행했다. 그는 우라노스의 고환을 잡고 날카로운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져 버렸다. 우라노스는 고통에 겨워 울부짖으며 가능한 한 높은 곳으로 달아났다. 

 

그는 그토록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아들이 무서워 거기에 그대로 머물렀다. 그 대신 서둘러 이렇게 저주를 내렸다. '감히 제 아버지에게 손을 댄 자는 거꾸로 제 자식에게 손찌검을 당하게 되리라'

 

이렇듯 많은 자식을 낳고 숱한 폭력을 겪은 뒤에, 하늘 우라노스와 대지 가이아는 영원히 결별했다. 이로써 크로노스가 세상의 지배자가 되었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5권)   

 

 

 

크로노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의 남근을 잘라 낸 뒤에 아버지의 왕좌를 차지했다. 지구에서 멀리 쫒겨난 우라노스는 그저 이따금씩 비를 뿌리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는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불한당>이라는 뜻으로 티탄이라 부르고, 자신을 상대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고 경고했다. 

 

티탄들은 자매들과 결합하여 여러 신들을 낳았다. 맏이인 오케아노스(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강)는 테티스와 함께 3천 개나 되는 강을 낳았다. 

 

막내인 크로노스는 누이 가운데 하나인 레아와 결합하여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역시 자식에게 권력을 빼앗기리라는 아버지의 저주를 잊지 않고 있던 터라,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계속 삼켜 버렸다. 

 

 

레아는 자식들을 잃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분노를 삼키다가, 여섯째이자 막내인 제우스를 잉태했다. 레아는 아이를 낳아서 숨기기 위해 크래타 섬으로 갔다. 아이가 태어나자 레아는 어머니 가이아가 일러준 계책대로 커다란 돌을 강보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주었다. 크로노스는 그것을 새로 태어난 아기로 여기고 즉시 삼켜 버렸다. 

 

이 계책 덕분에 살아남은 제우스는 나무가 울창한 산기슭의 동굴에서 자랐다. 아이를 보살피는 신들과 요정들은 아이가 울거나 소리를 지르러 할 때마다, 그 소리가 크로노스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아이 주위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창으로 방패를 두드렸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빠르게 자라나 성년에 다다랐다. 그는 감칠맛 나는 술을 아버지에게 가

져가 마시게 했다. 이 술에는 먹은 것을 토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악이 들어 있었다. 아들의 꾀에 넘어간 크로노스는 자신이 삼겼던 돌과 다섯 자식을 차례차례 토해냈다. 제우스와 그의 형제자매는 아버지가 다시 덤벼들기 전에 올림포스 산 꼭 대기로 피신했다 

 

 

크로노스는 자식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자기 형제자매인 티탄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리하여 구세대 신들과 신세대 신들 사이에 격렬한 전쟁이 벌어졌다. 처음엔 노련한 티탄들이 우세를 보였다. 그런데 티탄 가운데 하나인 프로메데우스가 제우스 편을 들며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그는 외눈박이 키클롭스들과 팔이 백 개 달린 헤카톤케이레스를 동맹군으로 삼으라고 일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은 아주 훌륭한 동맹군이었다. 그들은 제우스에게 천둥과 번개를 주고,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을 , 하데스에게는 누구든 쓰기만 하면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투구를 주었다. 

 

이 전쟁은 결국 올림포스 신들의 승리로 끝났다. 패배한 티탄들은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 지하의 명계보다 야래에 있는 타르타로스에 갇혔다. 한편 오르페우스 밀교의 전승에 따르면 크로노스는 제우스와 화해하고 타르타로스에서 풀려나 <지복을 누리는 자들의 섬>에서 살았다고 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5권)

 


 

3보 전진, 2보 후퇴

문명은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다. 문명에도 고유의 리듬이 있다. 3보 전진, 2보 후퇴가 바로 그 리듬이다. 달의 운행에 차고 이지러짐이 있고 조수에 만조와 간조가 있듯이, 문명에도 고조기와 퇴조기가 있다. 고조기에는 모든 일이 현기증 나는 회오리에 휩싸인 것처럼 잘 돌아간다. 

 

안락함과 자유는 증대되고 노동은 줄어든다. 삶의 질은 높아지고 위험은 감소한다. 3보 전진의 시대다. 그러다가 어떤 단계에 이르면 상승이 중단되고 곡선이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불안이 감돌고 공포가 밀려오면서 폭력과 혼돈이 생겨난다. 2보 후퇴의 시대다, 

 

 

일반적으로 이 퇴조기는 바닥에 닿을 때까지 이어진다. 그러다가 또 다른 고조기를 향한 도약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사이에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로마 제국이 건설되고 발전하여 법률, 문화, 기술등 모든 영역에서 당대의 다른 문명들을 앞지르며 번창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문명이 부패와 폭정의 길을 걷다가 쇠퇴의 늪에 빠져서 외적의 침입에 무너지는 것도 보았다. 로마 제국이 절정기에 중단되었던 인류의 위업을 다시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중세의 새로운 문명이 발전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렇듯 가장 잘 통치되고 앞날을 가장 잘 예견했던 문명들조차도 결국에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정말 문명의 몰락은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에드몽 웰즈)